

생물의 모든 정보가 담긴 유전체를 해독한다는 의미
미래에 어떤 생물 종을 복원하기 위한 첫걸음은 DNA상의 유전자 전체를 알아내는 일로, 이를 ‘유전체1 해독’이라 합니다. 유전체를 해독한다는 것은 그 종이 가지는 모든 유전 정보를 알아낸다는 것이며, 그 종이 진화해온 역사와 탄생의 비밀을 포함하여 그 종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본질적 정보가 포함됩니다.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유전체 해독과 연구를 통해 국가 생물다양성 보전에 기여하고자 국내의 섬과 연안에 자생하는 희귀 동·식물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 중 한 종인 ‘갯대추(Paliurus ramosissimus)’는 갈매나무과의 관목 중 하나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닷가(갯) 대추나무(대추)로 알려져 온 식물 종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갯대추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해안사구 및 염습지 중 극히 일부분에만 자생하는데, 이로 인해 한때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물론 현재도 그 개체 수가 주의 깊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갯대추 추출물이 강력한 항비만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유용식물자원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1. 유전체(genome): ‘게놈’으로도 불리는 ‘유전체’는 ‘한 생물종이 가지는 모든 유전 정보의 총체’를 가리키는 용어
유전체 해독을 통해 알아가는 생물다양성
갯대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도 분포합니다. 그중 중국과 대만 등의 유라시아 대륙 내에서 비교적 흔하게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국내에 자생하는 갯대추는 왜 본토가 아닌, 비교적 최근에 생긴 화산섬인 제주도에만 분포하고 있을까요? 개체 수가 풍부한 중국의 다른 갯대추들과는 어떠한 유전적 다양성의 차이가 있을까요? 저희는 유전체 해독의 다음 단계로 진행될 유전다양성 연구를 통해 이러한 과학적 의문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유전체 연구가 진행 중인 또 다른 국내 자생 희귀식물은 열매의 모양이 마치 만두를 닮아 이름 지어진 ‘조도만두나무(Glochidion chodoense)’입니다. 조도만두나무는 아직까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는 우리나라의 고유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남 조도 인근 지역에만 분포하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상태를 ‘위기’ 등급으로 평가해 희소성이 매우 높습니다.
신기하게도 만두나무속(屬)에는 300여 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 한반도에서 발견된 종은 조도만두나무 한 종뿐입니다. 과연 수많은 만두나무속 식물 중 왜 이 종만이 우리나라 일부에 분포하게 되었을까요? 또한, 우리나라의 섬과 연안에만 적응하면서 이 종만이 가지게 된 유전적 특징은 무엇일까요?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찾고자 조도만두나무의 유전체를 해독하여 이 정보를 바탕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비교하고 유전적 특징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야생생물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축과 작물보다 많은 분야에서 연구가 미진합니다. 다시 말해서, 더욱더 미지의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체 해독 연구는 단순히 희귀종을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고유 생물자원의 유전자원 주권을 확보하고, 희귀종들이 속한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열쇠를 마련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쥬라기 공원>에서 상상했던 복원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아직 미래의 일이겠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들의 유전체 정보를 차근차근 밝혀내는 것은 무궁무진한 생물다양성을 이해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