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패턴 변화가 만든 질병 발생 양상

야생조류 이동은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감염병 확산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철새는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며 대륙 간 장거리 이동을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지역의 조류 집단과 접촉하며 바이러스가 자연스럽게 순환할 수 있다.
과거에는 야생조류가 비교적 일정한 시기에 이동했고 질병 역시 특정 계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기후 변화와 서식지 환경 변화 영향으로 이동 시점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질병 발생 시기와 지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보다 국내 유입 시기가 달라지거나 질병 발생이 장기간 지속되는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동 과정에서 거치는 중간 기착지와 특정 월동 지역에서는 개체 밀집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바이러스 교환과 전파 가능성을 높이고 감염병 유입 가능 지역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동 이전에 나타나는 감염 신호

최근 해외에서는 기존 계절 패턴과 다른 질병 발생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의 경우 과거에는 특정 철새 도래 이후 동절기에 집중적으로 확인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여름철 야생조류 집단 폐사와 함께 HPAI가 검출되거나 초가을부터 발생하는 사례가 확인되었다. 이는 바이러스가 철새 이동 시기에만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야생조류 집단 내부에서 일정 기간 순환하며 다음 유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기후 온난화와 서식지 환경 변화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겨울철 기온 상승으로 일부 개체군은 북쪽 지역에 머무르거나 이동 시기를 늦추고 있으며 개체군 간 접촉 기회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농경지 확대나 인공습지 조성 등 인간 활동에 따른 서식지 변화는 야생조류 체류 지역과 체류 기간에 영향을 주고 특정 지역 개체 밀집 현상을 만들 수 있다. 다만 감염병 확산은 야생조류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후 변화가 바꾸는 조류 이동과 질병 확산 구조 *출처: Prosser., et al., Nature microbiology, 2023

이동 데이터가 바꾸는 감염병 감시와 대응 방식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야생조류 이동 자료와 질병 검사 자료를 함께 분석하며 감염병 확산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AI 바이러스 자연 보균 가능성이 높은 겨울철새(오리과 등 물새류)를 중심으로 이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국내 HPAI 발생 지점과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일부 발생 농가 주변 하천에서 야생조류 활동을 확인했고, 야생조류와 가금 농가에서 동일 유전형 바이러스가 검출된 사례도 있었다. 야생조류와 가금 농장 사이 전파 경로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야생조류 이동 데이터는 감염병 확산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감염병 대응 방식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야생조류 질병 감시는 특정 계절 중심 관리에서 이동 경로, 이동 시기, 서식지 이용 패턴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감염병 대응은 국내 유입 이후 대응보다 유입 이전 위험을 예측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야생조류 이동 데이터를 활용한 위험 예측과 조기 경보 체계가 구축된다면 감염병 대응은 보다 선제적인 형태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생태 정보는 공중보건과 방역 정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야생조류 이동을 지속적으로 관측하는 일은 미래 감염병 위험에 대비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AI 바이러스 자연 보균 가능성이 높은 야생조류

원앙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2024-2025 한국 부착 야생조류 위치추적기 현황 * 출처: 질병관리원 `24-`25 동절기 고병원성 AI 발생대응 및 결과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