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먼저 보내는 신호
겨울의 끝과 여름의 시작 사이에서 식물들은 온도와 강수, 햇빛의 미세한 차이에 반응하며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그래서 식물의 봄은 자연이 보내는 신호에 가깝다. 최근 국립생물자원관의 관측 기록과 예측 연구는 그 신호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국립생물자원관은 기후변화가 식물 분포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관악산, 남산, 인왕산, 북한산, 수락산 등 서울의 주요 산지에 분포한 식물종을 대상으로 장기 예측 연구를 수행했다. 조사 대상은 총 1,008종. 이들 식물이 2100년까지 현재의 서식지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기후 시나리오에 따라 분석했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온실가스 감축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약 65%의 종이 생존할 수 있었지만, 기후변화가 지금처럼 방치될 경우 생존 가능성은 40% 초반까지 떨어졌다.
이미 시작된 분포의 이동
예측 연구에서 확인된 식물 분포 변화는 이미 관측 기록에서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저지대에서 흔히 보이던 식물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은 지역이나 북쪽 사면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개화 시기가 빨라지거나 아예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한반도 고유종과 기후에 민감한 취약식물이다. 산개나리는 한국에만 분포하는 대표적인 고유종이다. 오랫동안 보호의 대상이 되어 왔고 비교적 안정적인 서식 환경을 유지해 온 종이다. 그러나 기온 상승과 강수 패턴 변화 앞에서 산개나리 역시 안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도 은꿩의다리, 털중나리, 쐐기풀, 호두나무 등은 기후 변화에 취약한 종으로 분류되며 장기적으로는 생존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보호받아 온 종들조차 기후라는 조건 앞에서는 예외가 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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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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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꿩의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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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중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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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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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
반대로 일부 식물은 변화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며 분포를 넓히고 있다. 개나리, 민들레, 개망초, 코스모스처럼 적응력이 높은 종들은 기후 변화 이후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연의 구성이 단순해진다는 점이다. 다양한 식물이 공존하던 숲과 들은 소수의 강한 종 위주로 재편되고 생물다양성은 눈에 띄게 감소한다.
점점 심해지는 지역별 생물다양성 격차
국립생물자원관이 행정구역별 생물다양성 변화를 예측한 결과 거의 모든 권역에서 생물다양성이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중간 수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적용했을 때 2050년까지 생물다양성이 줄어들지 않는 지역은 강원도뿐이었고, 충청남도는 2.63%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통학적 생물다양성 손실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위 10개 지역 중 7곳이 경기도권에 포함된 반면, 강원도권에서는 감소가 예상되는 행정구역이 3곳에 불과했다. 강원도처럼 기온이 낮고 고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식물 종들이 분포 범위를 옮기는 과정에서 정착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번 연구는 다수의 식물종을 대상으로 미래 기후변화에 취약한 종과 지역을 파악하고 보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봄의 식물들이 보내는 변화의 신호는 자연이 이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 국립생물자원관 (단위: %, 괄호 안은 감소종 수)
※ 2020~2050년 기준, 중간 수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SSP2-4.5) 적용
생물종들 간 진화적 거리를 측정해 생물다양성을 평가하는 계통학적 다양성(PD) 지표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