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고산 침엽수, 기후위기의 신호가 되다

기후위기는 자연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특히 이상고온과 병충해, 경쟁종 침입, 겨울철 가뭄 같은 환경 변화는 고산 취약생태계에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 등 한반도 남부의 고산지역에만 서식하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1988년 이후 15년 동안 한라산에서는 약 34%, 1981년 이후 27년 동안 지리산에서는 약 18%의 서식지가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Kim and Lee, 2013).
국립생태원은 이러한 변화 원인을 누적된 환경 스트레스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국내 고산 침엽수 연구는 식생 구조나 생육 변화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지만 국립생태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무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수준의 연구를 시작했다.

한라산 일대의 구상나무 고사
지리산 반야봉 일대의 구상나무 고사
한라산 구상나무 유전자 분석을 위한 현장 조사
반복되는 변화는 유전자에 남아 있었다

연구진은 실험실 안에 기후변화 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배양시설을 만들고, 구상나무를 대상으로 고온과 이산화탄소 증가, 건조 환경과 같은 조건에서 어떤 유전자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환경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반응이 크게 증가하는 유전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악산, 덕유산, 지리산 등에서 생육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지역과 쇠퇴가 진행된 취약 지역의 시료를 확보해 유전자 반응을 비교 분석한 것이다. 취약 지역의 나무에서는 특정 유전자 반응이 공통적으로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됐으며, 이러한 특징은 구상나무뿐 아니라 분비나무와 가문비나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반복적으로 증가하는 유전자 반응을 단계적으로 선별해 최종적으로 두 개의 핵심 유전자를 찾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다중진단마커유전자(MDG, Multiple Diagnostic Gene for alpine vulnerability) 기술을 개발했다.

나무의 상태를 유전자로 읽는 기술

다중진단마커유전자 기술은 유전자 반응을 통해 나무의 스트레스 상태를 진단하는 기술이다. 겉모습의 변화를 관찰하던 기존 방식은 피해가 누적된 후에야 발견이 가능했지만, 이 기술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초기 단계부터 나무 내부의 변화를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다.
연구진은 환경 변화에 따라 공통적으로 강하게 반응하는 유전자들을 선별해 분석 기준으로 활용했다. 건조나 고온 같은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나무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유전자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들의 활동이 증가하고 환경 변화 적응을 위한 식물호르몬 생성에도 관여하게 된다. 이러한 반응은 결국 나무가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가 된다. 현재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가문비나무의 취약성을 진단할 수 있는 진단키트 개발을 진행 중이다.

고산 취약생태계(구상, 분비, 가문비나무) 취약성 진단키트

고산 침엽수림 SOS: 스트레스 수준으로 진단하는 건강 상태

고산 생태계가 보내는 경고 신호

고산 생태계의 변화는 단순히 몇몇 수종이 줄어드는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서식 환경이 달라진 탓에 나무의 생리 활동과 유전자 반응까지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결국 고산 생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천천히 변화를 겪는 중이다.
국립생태원은 앞으로 유전체 기반 진단 기술을 활용해 생태계 보전 방식을 한층 정밀하게 발전시킬 계획이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개체를 미리 선별하고, 적응력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나무를 중심으로 복원 전략을 세우는 선제적 대응으로 관리의 틀을 바꾸려는 것이다.연구진은 무엇보다 지금 나타나는 변화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한다. 고산 지역은 환경 변화에 가장 민감한 곳인 만큼, 이곳에서 관찰되는 작은 유전자 반응은 앞으로 마주할 더 큰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어쩌면 숲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 신호를 얼마나 늦지 않게 읽어내는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