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야생동물 질병의 확산

국내 야생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처음 발견된 것은 2019년 10월, 경기 연천군이었다. 그로부터 시작된 ASF는 백두대간을 줄기 삼아 경기와 강원을 지나 충북과 경북까지 점진적으로 남하했다. 2026년 4월 기준, 전국 45개 지역에서 총 4,485건의 발생 사례가 보고되었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확산세를 꺾기 위해 전국 야생멧돼지를 대상으로 ASF 전수 검사를 이어오고 있다. 초기에는 폐사체나 발생지 인근 개체에 집중했지만, 2022년 충북과 경북까지 전선이 넓어지면서 이제는 전국을 위험권으로 두고 감시 체계를 촘촘히 강화하고 있다. 연구진은 특히 ASF 확산 과정의 ‘패턴’에 주목하고 있다. 본래 야생멧돼지는 서식 반경이 5km 내외인 정주형 동물이어서 외부 간섭이 없을 경우 갑작스러운 장거리 이동은 드물다. 멧돼지끼리 접촉하며 서서히 퍼지는 이른바 ‘자연적 전파’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개입이 불러온 의외의 경로

진짜 문제는 사람의 이동이 섞이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멧돼지의 자연적인 발걸음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검출 사례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23년 12월 부산 사례이다. 당시 가장 가까운 발생지였던 경북 포항에서 무려 108km나 떨어진 곳이었으며, 조사 결과 수렵인의 불법 포획과 사체 무단 이동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인간의 부정행위가 바이러스를 옮긴 셈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감시의 눈길을 야생멧돼지 너머로 확장했다.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사람의 옷이나 차량, 장비 등에 묻어 어디든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람과 장비가 바이러스의 ‘셔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인위적 전파 요인까지 철저히 살피기 시작했다.
2024년 하반기부터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던 ASF는 2026년 들어 다시 전국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만 강원 지역 87건을 포함해 총 139건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기존 발생지 내에서 국지적인 재확산 위험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전파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

2026년 양돈농장의 ASF 발생은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짧은 기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연도별 발생 건수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의 유전자형 분석 결과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경기와 강원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양돈농장에서 유행 중인 바이러스는 기존 멧돼지들 사이에서 돌던 것과는 다른 유전아형(IGR-1형)으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후 울산 북구와 경북 고령의 야생멧돼지에서도 동일한 유형의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이는 농장과 야생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질병이 양방향으로 오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길목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언제든지 사람과 장비를 타고 예상보다 훨씬 깊숙이, 그리고 빠르게 파고든다. 실제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조사 결과에서도 양돈농장의 사료 운반 과정이나 출입 절차 등을 유입 추정 요인으로 꼽았다.

야생동물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ASF 대응이 결코 단거리 경주가 아님을 강조한다.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인 데다 천적마저 없는 환경은 질병 확산에 최적의 조건이다. 여기에 물류와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는 사회적 변화까지 더해지며 위험 요소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연구진은 방역 정책이 중장기적인 호흡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멧돼지 개체 수 조절과 오염원 제거 같은 기초 작업은 물론, 종사자 교육과 기관 간 정보 공유라는 소프트웨어적 측면까지 빈틈없이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업무협약(MOU)을 통해 발생 현황과 유전형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결국 야생동물 질병 관리는 인간과 동물, 환경을 하나로 보는 ‘원 헬스(One Health)’의 문제이다. 지금의 신호를 야생동물만의 비명이 아닌 생태계 전체의 구조 요청으로 받아들여, 적기에 대응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인위적 전파 차단을 위한 방역실태 점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