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변화를 알려주는 생태계의 섬세한 지표
지속적인 환경 변화는 그곳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반응을 통해 무언의 신호로 전달된다. 한반도에는 총 17종의 개구리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동안 섬 지역에 서식하는 개구리류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였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그 실태를 파악하고자 2021년부터 5년 간 국내 263개 섬 지역 대상 양서류 조사를 체계적으로 실시하여, 생태계가 보내는 이러한 신호들을 추적해 왔다.
연구 대상으로 개구리를 주목한 이유는 이들이 기온을 비롯한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생물이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주변 환경에 따라 체온이 달라지는 대표적인 변온동물이다. 또한 종마다 선호하는 환경 요인과 미세 서식지가 달라, 특정 지역에 출현하는 종을 확인하면 해당 지역의 복합적인 환경 조건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개구리가 어떻게 분포하고 적응해 왔는지 파악하는 것은 해당 생태계의 건강성과 환경 변화에 대한 반응을 가늠하는 핵심적인 척도가 된다.
5년의 조사 연구가 맞춰낸 생태계의 퍼즐 조각들
우리나라의 다양한 섬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전체 조사 대상의 약 60%에 해당하는 156개 섬에서 총 12종의 개구리류 서식이 확인되었다. 가장 많은 섬에서 서식이 확인된 종은 청개구리로 압해도, 신지도 등 143개 섬에서 나타났으며, 참개구리가 돌산도, 창선도 등 113개 섬에서 확인되어 그 뒤를 이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된 수원청개구리의 경우 서해안 단 1곳의 섬에서만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어 매우 제한적인 분포 양상을 보였다. 또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맹꽁이와 금개구리도 서해안 중· 북부 및 남해안 일부 섬에서 서식이 확인되었다.
이번 5년간의 조사 연구가 보여준 의미 있는 발견 중 하나는 손죽도, 율도 등 32개 섬이 기존 문헌이나 연구에서는 보고되지 않았던 새로운 개구리류의 서식지로 확인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발적인 조사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섬 생태계 내 생물다양성에 대한 강력한 신호이며, 척박하고 고립된 섬이라는 공간 속에서도 양서류가 생존할 수 있는 생태적 환경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5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그동안 숨겨져 있던 섬 생태계의 생물다양성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는 획일적인 내륙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서식지 조건이 제각각인 섬들의 특성을 반영한 ‘섬별 맞춤형’ 보전 전략과 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청개구리
143개 섬
참개구리
113개 섬
멸종위기 야생생물
맹꽁이
12개 섬
금개구리
5개 섬
수원청개구리
1개 섬
유전자가 들려주는 고립과 진화의 신호,
그리고 섬의 역사
단순한 종의 분포를 넘어, 생태계가 겪어온 거대한 변화의 역사는 개체군의 유전자 속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청개구리와 무당개구리 두 종을 대상으로 섬과 육지라는 지역적 차이에 따라 유전적 구조가 어떻게 다른지 심층 분석을 진행한 결과, 거제도 등 일부 섬 지역에 서식하는 개체군에서 육지 개체군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고유한 유전자형(Haplotype)이 관찰되었다. 겉모습은 육지의 개체와 비슷하지만 이처럼 유전적인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섬 지역의 개구리류가 지리적으로 분리된 환경에서 오랜 세월 동안 독립적인 유전적 특징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물의 유전자 정보는 과거 섬의 형성 과정과 지질학적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타임캡슐과 같다. 수만 년 전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아 현재의 서· 남해는 대부분 육지였고, 한반도와 중국, 일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후 기후가 따뜻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섬으로 분리되었고, 당시 서식하던 생물 집단이 각자 격리되어 현재의 분포와 독자적인 유전적 진화를 이룬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 섬 지역에 다양한 개구리류가 서식하는 것도, 과거 육지에 서식하던 여러 개체군이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동해에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는 해저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섬으로, 특히 울릉도에 서식하는 참개구리는 자연적인 격리가 아닌 사람에 의해 유입된 집단이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어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유전자 분석을 시행한 무당개구리
섬 개구리 조사 모습
보전을 향해 맞춰지는 생태계의 퍼즐
5년에 걸친 섬 양서류 조사 연구는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섬 생태계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체계적인 조사 연구를 통해 32개의 신규 서식지가 발견되고, 유전 분석 결과를 통해 일부 섬 지역 개체군에서 육지와 구분되는 양상이 확인되었다. 이는 섬 생태계가 품고 있는 보전 가치가 단순한 종 다양성을 넘어 유전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장기적인 생물상 조사와 유전자 연구가 맞물리며, 알려지지 않았거나 파편화되어 있던 생태계 변화의 신호들이 마침내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생태계가 굳건히 버텨온 흔적과 환경 변화에 반응하는 신호는 이미 확인되었다. 앞으로도 꾸준한 연구를 통해 우리 생태계가 보내는 미세한 신호들을 놓치지 않고 해석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