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중입니다.
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이과대학 지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물 지리학을 연구하는 공우석 교수입니다. 그동안 한반도 식물의 분포와 생물다양성을 기후·지형·인간과 연결해 연구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고산, 아고산, 섬에서 자라는 식물의 자연사, 기후변화 취약종과 생태계,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대응에 관해 연구 중입니다.
기후변화가 지리학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지리학은 지형·기후·생물·토양 등 자연환경 그 자체는 물론 자연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지구상 모든 생물은 기후 요소에 따라 생존이 결정됩니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따른 생물의 진화·이동·확산· 멸종은 지리학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징을 알려주세요.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땅입니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질수록 더위를 피할 피난처나 어딘가로 옮겨갈 이동 통로가 적다는 뜻이죠. 2만여 년 전, 혹독한 빙하기가 왔을 때 북방계 극지 고산식물이 피난처를 찾아 한반도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식물은 현재 한반도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물론 이들이 사라져도 우리가 먹고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겠지요. 그러나 한반도의 자연사를 보여주는 생물들이 사라지는 것은 곧 우리의 자연 유산을 잃는 것입니다.
최근 사과의 주산지가 변한 것도 기후변화의 결과일까요?
한국의 사과 주산지로 알려진 대구는 최근 들어 명성을 잃었습니다. 남부 산악지역이나 휴전선에 가까운 중부지방이 사과의 새로운 주산지로 떠오르고 있죠. 이렇듯 사과 주산지가 달라진 이유는 사과의 생육과 결실에 알맞은 기상 조건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기온이 상승하고 밤낮의 일교차가 적어지면서 대구에서 재배하는 사과의 품질이 떨어진 겁니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사과의 주산지가 북한을 넘어 러시아나 중국 만주 지방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사과를 수입하는 국가가 됩니다. 더욱이 동남아시아나 남아메리카 국가와의 가격 경쟁력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외래종인 왕우렁이가 한국 벼농사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벼농사를 위협하는 요인은 왕우렁이뿐만 아니라 열대야와 잦은 태풍 등 이상 기후입니다. 지구가 따뜻해진 만큼 토착 곤충들도 활발하게 번식해 개체를 늘리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늘어난 토착종도 벼농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식량의 무기화가 현실이 되는 상황에서 벼의 생산을 걱정하는 것에 앞서 보리·밀·콩·옥수수 등의 재배 면적을 늘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한국에서는 제주도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곳일까요?
한국에서 지구온난화 피해가 가장 큰 곳은 제주도 한라산입니다. 한라산 구상나무의 고사를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죠. 그러나 구상나무처럼 키도 크지 않고 개체수도 많지 않아 변화를 감지하기 힘든 동물과 식물이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의 종이 사라지면 유전자·생물종·생태계 다양성이 동시에 소실되니까요.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현상들이 나타나는 이유를 말해주세요.
지구 시스템은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를 낳지 않고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지구 시스템을 이루는 하나의 마디에 문제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우리의 삶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생물과 기후는 지구 시스템의 중심입니다. 숲에 사는 동·식물이 사라지면 인류의 안락한 미래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기후변화를 멈추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행동할 시기입니다.
기후변화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요?
사람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기후변화의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기후변화를 촉발한 원인 제공자이자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후변화의 진정한 희생자는 기후변화를 부추기지 않은 동·식물입니다. 특히 대중들의 관심 밖에 있는 높은 산·외진 곳·먼 섬과 바다에 사는 동·식물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귀찮아도 오늘부터 지구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