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발표한 동절기
야생 조류 AI 바이러스 예찰 지점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AI 바이러스

조류인플루엔자(AI, Avian Influenza) 바이러스는 주로 새가 걸리는 호흡기 바이러스로 사람에게도 전파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오리·기러기 등 야생 조류와 농장에서 사육되는 닭·칠면조 등 가금류 모두 바이러스 대상이지만, 조류의 종류와 병원성 여부 등에 따라 파급력이 다르다.
AI 바이러스는 조류에게 얼마나 치명적이냐에 따라 고병원성과 저병원성으로 나뉜다.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는 목이 돌아가거나 한 방향으로 빙빙 도는 이상 증상을 보이면서 결국 죽게 된다.
야생 조류와 가금류 사이의 임상증상이나 치사율도 다르다. 오리·기러기 같은 야생 물새류(Wild Waterfowl)는 다른 숙주 바이러스보다 오랜 기간 생존하는 자연 숙주 바이러스로 전파력이 높다.
큰기러기, 청둥오리 등 야생 조류 모습
(2022년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야생 조류 시료의 채취 방법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매년 AI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에 예찰 지점을 선정한다. 겨울철새가 대규모로 도래하는 서식지 중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발생했던 곳, 원앙·고방오리 등 AI 바이러스에 잘 걸리는 조류종이 많이 오는 곳 등에서 주로 작업한다.
AI 바이러스를 조사할 때는 야생 조류에게 시료를 채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야생 조류 시료의 채취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야생 조류를 직접 생포한다. 포획한 야생 조류에게서 채혈한 혈액을 통해 AI 바이러스 항체 형성 여부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 단, 야생 조류 포획에는 매우 숙련된 전문가가 필요하다.
둘째, 폐사한 야생 조류의 사체를 검사한다. 야생 조류 사체 장기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로 인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한계가 있다. 고병원성 AI에 감염됐지만, 폐사가 드물게 일어나는 조류종에 관한 샘플 채취가 어렵다.
셋째, 야생 조류 분변의 채취다. 해당 방법은 AI 바이러스 검출율이 가장 낮지만, 전국 철새 도래지에 대한 비교적 고른 조사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난도가 낮아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 야생 조류 분변 채취 모습
    (2021년 11월 18일 경남 사천 사천만)

야생 조류 분변 채취하기

2022년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87개 지점에서 AI 바이러스 예찰을 수행했다. 겨울철새가 도래하는 10~11월경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많이 검출되는 지역인 안성 청미천, 천안 풍서천, 고창 동림저수지 등에서 야생 조류의 분변을 채취했다.
분변 채취는 야생 조류가 있는 곳을 맨눈으로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많은 수의 야생 조류가 있어야 하고 도보로 안전하게 접근이 가능한 장소에서 신선한 분변을 많이 채취할 수 있다.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넓은 모래벌판이나 수확이 끝난 농경지가 좋다. 연구원은 방역복, 마스크, 장갑 등 개인보호구를 착용하고 튜브나 나무젓가락과 같은 채취 도구를 이용해 야생 조류의 분변을 찾는다.
새의 분변은 조류종에 따라 색상이 가지각색이지만 녹색이 살짝 섞인 갈색이 대부분이다. 분변의 색상이 토양의 색깔과 비슷해 새의 깃털이나 발자국을 통해 새들이 앉았던 지점을 유추하는데, 분변을 채취하는 연구원들은 AI 바이러스를 확산시킬 위험이 있어 분변을 발로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접근해야 한다.
AI 바이러스는 햇빛이나 습도에 민감하다. 분변을 발견하면 나무젓가락으로 분변의 건조 정도를 확인한 뒤 굳지 않은 분변만을 골라서 채취해야 한다. 또한 교차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젓가락당 하나의 분변만을 주워 튜브에 담아야 한다. 보통 한 지점에서 50~200개 분변을 채취한 뒤 서식 야생 조류종, 주변 환경, 식생 등을 사진으로 기록하면 끝. 채취한 분변은 신선도 유지를 위해 실험실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이스박스에 보관한다.
  • ▲ 원앙 유조
  • ▲ 흰뺨검둥오리 유조
  • ©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이민아 연구원

정확한 AI 바이러스 진단을 위한 단계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분변을 바로 검사할 수 없다. 분변 안에는 실험에 방해되는 불순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전처리 작업이 우선이다. 신선한 분변에 삼투압을 맞춘 물인 인산버퍼액(PBS, Phosphate Buffer Saline)을 첨가해 균일하게 섞은 다음 원심분리 작업을 진행한다. 바이러스는 상층액에 남고 분변의 불순물은 가라앉아 순수한 바이러스만을 분리할 수 있다.
이후 두 가지 검사법을 활용해 AI 바이러스를 진단한다. 먼저 분변 상층액에서 유전자를 추출한 후 실시간 역전사 PCR(Real-time Reverse Transcription-PCR) 방법을 이용해 AI 바이러스 특정 유전자인 M·H5·H7 유무를 검사한다. 두 번째로 분변 상층액을 9~11일령 부화 전의 병아리가 들어 있는 달걀에 접종해 3~5일간 바이러스를 배양하고, 배양 동안 종란(씨알)의 생사를 확인한다. 배양이 끝나면 AI 바이러스 유무를 검사해 양성일 경우 유전자를 추출한다. 추출한 유전자로 바이러스의 유형을 확인하고 H5 및 H7형이 검출되면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고병원성 여부를 판단한다.
  • ▲ 유전자 분석 중인 연구원들
    ­
  • ▲ 바이러스를 배양한
    종란(씨알)의 생사 확인
  • ▲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정솔 연구사
  • 인간·동물·자연을 위한 사명감

    내가 하는 일이 야생동물 질병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죽음을 많이 목격한다. 가끔은 이 직업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새를 많이 보는 게 즐겁다. 하늘을 수놓은 새들의 군무를 볼 때마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동료들도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동물을 사랑한다. 대부분 애완동물을 키우고, 길을 가다 마주치는 고양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유기견이나 유기묘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임시 보호와 봉사활동을 한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다른 무엇도 아닌 환경과 동물을 위해 사용된다는 믿음이 나를 계속 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