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좋은 곳 데려가 봐야 다 소용없어. 어차피 기억 못 해.”

연휴에 아이와 놀러 갈 곳을 찾을 때 늘 듣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주말에 늦잠도 자고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의무감’이 생겨서, 부모는 아이들 손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장소가 어디였고 뭘 했는지 구체적인 정보는 아이들이 잊어버릴지 몰라도 부모님과 함께했다는 그 ‘감정’만큼은 평생 남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부모님께서 “여기 갔던 거 기억나?”라고 물어보시면 항상 “아니.”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과 핫바에 행복해 했던 그날의 여행길이, 내비게이션도 없이 지도를 보고 길을 찾던 아버지를 우러러봤던 그 순간이, 텐트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 가족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가스버너로 보글보글 끓인 라면을 먹던 그 아침이, 흐릿하지만 행복한 감정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마 오늘 방문한 4천 명의 어린이 중에서도 수년이 지났을 때, 국립생물자원관의 어린이날 행사를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다만 흐릿한 잔상으로 부모님 손을 잡고 어딘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따뜻한 감정’만큼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겠지요.
국립생물자원관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선사한 이 소중한 하루는 그런 따스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어린이날, 엄마가 사라졌다

잠든 아이를 놔두고 새벽같이 출근한 오늘은 바로, 어린이날이었습니다. 퇴근길에 네가 좋아하는 간식과 선물을 사 들고가서 꼬옥 안아 주리라 다짐했습니다. 엄마는 수천 명의 아이들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어린이날 행사 담당자라는 걸 아이가 이해해 줄지 모르겠습니다.
행사가 임박할수록 야근도 잦아졌고 엄마, 아내 자리는 점점 더 비어 비어 갔습니다. 남편과 아이 사이에서만 통하는 단어, 행동이 늘어날 때마다 필자의 공백이 얼마나 길었는지 체감됐습니다. 행사장 곳곳에서 뽀짝뽀짝 엉성한 발걸음을 옮기며 발갛게 상기된 표정을 숨길 수가 없는 아이들 틈에서 우리 아이의 그림자가 계속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린이날 저녁 8시,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엄마 보고 싶었어.”라며 달려드는 세 살배기 아이가 있습니다. 아직 ‘오늘’이 무엇인지도 모르기에 서운함조차 들지 않는 어린애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그날, 우리 집 어린이날은 저녁 8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날의 외출이 아이의 세상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들어 줬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이야기(上)

아이들은 어린이날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어린이날 행사를 준비하며 교사로 근무 중인 친구에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각종 장난감으로 가득한 환경’, ‘부모의 잔소리가 없는 하루’ 등을 기대한 저에게는 뜻밖의 답이 들려왔습니다. 어린이날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치는 생각보다 편차가 크다는 것이었죠. 국내외 장소 가리지 않고 버킷 리스트를 해소하고 오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에 집 안의 걱정과 어른들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고 와야 하는 아이들도 많다는 것을 말이죠.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빨라서 부모의 표정, 말투, 행동을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부정적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죠. ‘어린이날.’ 사실 아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부모의 무한한 관심과 애정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이곳에 방문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사정을 몰라도 되는, 맑고 순수한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또 이날만큼은 부모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의 비중을 늘렸지요. 아이 손을 잡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투어 프로그램, 부모가 아이의 손을 매만지며 직접 붙여주는 동·식물 판박이 스티커 놀이, 무대에서 신나게 재롱을 뽐내면 앞에서 환하게 웃어주는 가족을 바라볼 수 있는 장기 자랑까지.
평소 같으면 비가 내린다고 집에 있자고 했을 부모님이,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와서 이 재미난 것들을 종일 함께 한다는 것에 흥분한 아이들은 ‘행복한 아우성’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下)

너의 세상이 더욱 즐거웠으면 좋겠다

쪼르르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준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미션을 완수해 가는 게임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오늘 하루, 아이들은 참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그것도 매우 재미있게 말이죠.
로비의 벤치에 앉아 재잘대는 한 가족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아이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아이는 부모님 품에 안겨 한없이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마치 무용담처럼 말입니다. 아이가 이 긴 자랑을 풀어낼 상대가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날의 외출이 아이의 세상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들어 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