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록습지 © 광주광역시청

태초의 습지와 만나는 길

습지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물의 오르내림만으로도 생명을 꿈틀대게 하는 곳. 그 단순한 정화 작용 속 뒤엉킨 생동감을 목도하고 싶었다. 태초의 탄생을 눈과 코로 따라가다 보면, 몸속에 차곡차곡 쌓인 도심의 노폐물이 정화될 것만 같았다.
땅과 물의 역사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거대한 습지가 전라도 광주에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심 국가 습지로 지정된 황룡강 장록습지다. 시나 면 단위도 아닌 150만 명이 거주하는 광역시 한가운데 야생동물의 천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출발할 이유가 충분했다.
장록습지는 지난 2017년, 광주광역시가 이곳의 가치를 환경부에 의뢰한 이후, 진행된 생태조사에서 도심 습지에서는 보기 힘든 생물다양성이 확인됐다. 덕분에 환경부의 26번째 보호 습지이자 5개의 한천형 국가습지 가운데 유일하게 도심에 자리한 습지가 될 수 있었다.
이미 푸른색으로 환복을 마친 장록습지는 거대한 자연의 파노라마로 객을 맞았다. 호수이면서 초원이기도 하고, 땅도 아니고 저수지도 아닌 곳. 습지는 물속 오염을 걸러주는 거대한 정수기이자 홍수에는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가뭄에는 물을 배출한다. 당연하게 누렸던 자연의 내막에는 깊은 풀냄새를 머금은 어머니의 땅, 습지가 있었다.
초록색 융단의 놀라움은 눈보다 코가 먼저 알아챘다. 땅속에, 아니 사실은 물속인지도 모를 늪 속에 꿈틀대는 생명의 냄새가 이런 것일까? 이게 바로 죽은 개구리밥과 산 개구리밥, 물풀이 뒤섞인 물, 아니 땅 아래 부글부글 끓고 있을 생명의 냄새일까? 비록 도심 속이었지만 이곳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800여 종의 생물, 멸종위기종 1급인 천연기념물 수달과 삵, 새호리기, 흰목물떼새들이다.

무등산 전경

수달
수달은 물에서 헤엄치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식육목 족제비과에 속하는 대표적인 포유류이다. 하천이나 호숫가에 주로 사는 수달은 물가에 있는 바위 구멍 또는 나무뿌리 밑이나 땅에 구멍을 파고 산다. 야행성인 데다 시각, 청각 특히 후각이 발달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고양이과 동물에 속하는 맹수이자 회갈색 털에 회백색 뺨, 세 줄의 갈색 줄무늬로 고양이와 무척 닮기도 했다. 설치류, 조류 등을 주로 사냥하는 기회적 포식자로 호랑이 없는 산의 최고 포식자라 할 수 있다.
흰목물떼새
도요목 물떼새과에 속하는 조류로 국내에는 국지적으로 강가의 자갈밭이나 모래밭에서 소수가 번식하는 드문 텃새이다. 자갈이 많은 하천이나 강가에 주로 서식하는 흰목물떼새는 단독 또는 작은 무리를 이뤄 생활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새호리기
여름 철새인 새호리기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의 귀한 조류로 매와 무척 유사하지만, 크기가 조금 작다. 뛰어난 비행술을 가졌고 하늘에서 날개를 오므려 급강하하며 작은 새와 같은 먹이를 사냥한다.

무등산 주상절리대

지구의 시간을 품은 자연

광주는 사실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에 가깝다. 장록습지를 앞세워 도심 곳곳에서 황룡강, 무등산, 지산유원지 등 경이로운 생명력을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록습지에서 감탄을 터트렸으니 당연한 수순처럼 장록습지의 원천, 황룡강 생태 산책로 누리길을 따라 걸었다.
황룡강과 들판을 비롯해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고봉 기대승의 마실 길, 시간이 멈춘 듯한 임곡 마을의 풍경을 다양하게 감상하며 자연사 박물관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황룡강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선운지구 친수공원에 다다르자, 하천부지에 흐드러진 꽃밭과 산책로가 계절의 색을 더한다.
우리나라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 국립공원은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에 있는 유일한 해발 1천 미터급 산이다. 무등산은 흔히 ‘어머니의 산’으로 불린다.
4천여 종이 넘는 다양한 생명을 품고도 경사도 10 미만의 면적이 전체의 65%를 차지할 정도로 산세가 유순하기 때문이다.
무등산을 한참 오르다 만나는 주상절리대는 화순 공룡 화석지, 적벽 등과 함께 무등산권 지질공원으로 묶여 2018년 4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이름을 올릴 만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유네스코의 영예는 단순히 그 대상을 관광지로 부흥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역사와 지질학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자연의 기념물에 내리는 보전 조치다. 그게 바로 지금 내가 주상절리대에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7천만 년 전, 화산이 게워 낸 땅의 물질들이 마그마와 뒤엉킨 생생한 흔적이 쓰러질 듯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습지와 강, 산을 걷는 동안 온갖 독특한 식물과 낯선 색의 깃털을 가진 새들의 기척이 눈과 귀, 코를 쉴 새 없이 자극했다. 화려한 생물다양성을 지닌 대도시 광주가 처음부터 몰랐던 도시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구의 한 찰나, 자연이 남긴 거대한 발자국의 도시. 광주는 그렇게 새로 기억될 것이 분명했다.

사람, 동물 그리고 환경을 보살피는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지난 2020년 10월 개원한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야생동물 질병에 관리를 총괄해 사회, 경제적 영향에 대비한 국가기관이다. 야생동물 질병은 야생동물 개체군의 존속과 생태계 건강성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부 질병은 야생동물을 매개로 인간이나 가축에 전파돼 사회 경제적 피해도 주고 있다.

유례없던 팬데믹을 야기한 코로나19 역시 야생동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스, 메르스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SFTS)은 야생동물과 사람, 가출에도 전파되는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0년 동안 발견된 사람의 새로운 질병 중 75% 이상이 야생동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야생동물 질병에 대한 시료 진단 분석과, 기술 개발 등 체계적인 연구와 함께 예찰, 역학조사, 방역에서 전문적인 대응을 통해 사람, 동물 그리고 환경을 통합적으로 관리해 원헬스(One Health)체계를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