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도입을 준비하라

언제 어떤 동물이 밀수가 될지, 유기가 될지, 적발이 될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CITES동물부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 도입될지 모르는 동물 보호를 위해 항상 대비하는 것이다. 다른 업무 처리 중에도 구조가 필요한 동물이 있다는 연락이 오는 순간부터 새로운 업무가 시작된다. 우선 구조가 필요한 동물을 사진만으로 종을 판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해당 종 정보를 알아보면서, 어떻게 사육할지 사육장을 구상・준비하고 먹이는 무엇인지 파악한다. 보호시설의 상황에 따라 새로 사육장을 준비하고, 새로운 먹이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때때로 전국 어디든 동물 인수를 위해 현장으로 가기도 한다. 국립생태원으로 이송된 동물은 종 마다 정해진 검역기간을 거친 후 보호시설로 도입된다. 도입 전부터 해당 동물에 대해서 파악하고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동물을 관리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새롭게 배워나간다. 이론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현장이 주는 가르침이다. 도입되는 동물 수만큼 나의 업무량은 늘어난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내 업무가 적성에 맞다.

유튜브 조회수 130만의 주인공 도입

서벌은 보호시설을 운영한 지 얼마 안 된 초창기에 도입되었다. 나는 이 서벌을 도입 전부터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고, 동물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동물이었다. ‘고양이 잡아먹는 고양이’라는 타이틀로 방송을 탔던 그 주인공이 임시보호 시설에서 지내다 마침내 운영을 시작한 우리 보호시설로 이관된 것이다. 서벌은 아프리카 중형 고양이과 동물로 CITES 부속서 Ⅱ에 포함되어 있다. 해외에선 맹수를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사례가 다수 있지만, 국내에선 CITES 부속서에 포함되어 있는 포유류의 개인 사육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서벌을 새끼부터 고양이처럼 키웠을 것이고, 고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생에 풀려난 서벌은 자신보다 작은 길고양이를 사냥하는 야생성을 어김없이 드러내었다. 도입 후 보게 된 서벌의 첫 인상은, ‘아무래도 얘를 고양이라고 주장하긴 힘든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치곤 큰 덩치, 길쭉한 다리, 낯선 사람을 향해 하악거리는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동물이 사나운 것은 좋은 징조라고 본다. 사람한테 화를 낼 정도로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서벌을 위해 보호시설 포유류 사육실 중 가장 큰 사육실을 배정하였지만, 야생에서 서벌의 활동 반경은 약 10㎢라고 한다. 근데 우리 건물의 평면 면적을 다해도 10㎢가 안된다. 일부 동물원에서도 문제가 되었지만 너무 좁은 사육공간은 동물복지 면으로 볼 때 전혀 좋지 않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 같은 비정상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팀원들과 한정된 공간 안에서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했고 나무를 이용해 걸어다닐 수 있는 캣워크와 장난감 등을 설치해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사육장을 꾸며주다보니 내실에는 설치한 나무에 잠을 자는 지정 장소가 생기기도 하고, 외실에는 일광욕을 하는 최애 장소가 생기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서벌의 사육장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구조물을 추가하고 오감을 자극시키는 행동풍부화도 병행하였다. 다만 '이로써 충분한 것인가? 이 아이는 여기서 행복한가?' 하는 생각은 늘 들 수밖에 없었다.

서벌, 미국 생츄어리 보내기 프로젝트

물론 국립생태원 CITES동물 보호시설은 밀수, 유기되는 CITES동물들을 최전방에서 구조하고 보호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나는 이 보호시설이 동물에게 종착지가 아닌 더 좋은 곳에 가기 위한 중간 거점이 되기를 바란다. 결국 나의 바람과 동물의 행복을 모두 채우기 위해 작년부터 해외 동물 생츄어리, 종 보전시설, 환경이 좋은 동물원 등 여러 기관의 정보를 수집하였고, 수많은 동물 이관 문의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답 메일이 온 건 정말 소수였고 이마저도 거절하는 메일이 대부분이었다.
빈 메일함만 매일같이 확인하던 어느 날 The Wild Animal Sanctuary 대표의 답 메일이 왔다. The Wild Animal Sanctuary는 미국 콜로라도에 위치한 전 세계 최대 규모(4,912㎢)의 생츄어리로 넓은 부지에 수 백마리의 사자, 호랑이, 곰, 늑대 등 대형 맹수들을 보호하고 있는 맹수 전문 생츄어리다. 특히 이 생츄어리는 국내 사육곰 농장에서 고통받던 반달가슴곰 22마리를 구조한 생츄어리기도 하다. 처음에는 대형 맹수들만 구조하는 기관으로 생각해 서벌 이관은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츄어리에 대한 정보 탐색 중 구조 동물 목록에 서벌이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가능성을 보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 서벌이 어떻게 한국에서 발견이 되었고, 어떻게 구조되었으며, 왜 생츄어리로 보내고자 하는지를 담아서 문의 메일을 보냈었다. 내 진심이 통했는지 대표는 현 상황을 국제적 구조로 판단한다고 했고, 서벌을 생츄어리에서 보호하겠다고 답변을 주었다.
생츄어리 대표의 수용 답변도 받았으니 서벌 생츄어리 보내기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했다. ‘보내기’라는 말과는 다르게 실제는 합법적인 CITES동물 수출 절차를 진행했다. CITES동물 수출은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 진행하는데 애초 동물 수출 경험이 없었던 나는 준비 과정부터 애를 먹었다. 시작부터 가장 큰 문제는 밀수, 유기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내에 도입된 동물을 국외로 반출했던 선례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진행했던 모든 상황이 아마 국내에선 처음 시도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동용 사육장에서 13시간의 긴 비행시간을 버틴 후 미국 생츄어리에 잘 도착한 서벌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서벌의 해외 이관에 필요한 모든 절차가 준비되었다. 출국 전 건강검진 및 검역 과정은 원내 동물복지부 수의사들의 협조를 받았고, 적법한 수출허가에는 금강유역환경청의 협조로 서벌의 출국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출국 날까지도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내심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진행과정을 검토할 수 있는 선례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출국 날 새벽, 잠 자고 있던 서벌을 깨워 이동용 사육장에 들어가게 유도하였다. 잘 자다가 갑자기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매우 심기가 불편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좁은 공간에 장시간 있던 경험이 없다 보니 공항까지 이동시간과 긴 비행시간을 이동용 사육장에서 잘 버텨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지까지 동행을 못하다보니 더욱 걱정이 되었다. 서벌과 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출국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다음날 새벽, 현지 담당자로부터 서벌이 13시간의 긴 비행을 잘 버틴 후 미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서벌 입장에서는 더 넓고 좋은 환경에서 묘생 제2막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서벌의 무운을 빌 뿐이고, 제2의 ‘고양이 잡아먹는 고양이’ 같은 비극이 안 생기길 바랄 뿐이다.

현재 진행형

서벌은 운이 좋게 좋은 환경으로 보낼 기회가 생겼지만, 이 보호시설에는 아직도 수백 마리의 동물들을 보호 중이다. 밀수되는 동물의 95% 정도가 파충류이다. 파충류 같은 경우는 소리를 내지 않아 숨기기도 좋고, 커져가는 파충류 시장에 맞춰 더 희귀하고, 고가의 파충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지 밀수가 끊이지 않는다. 밀수업자들에게 동물이란 그저 숨겨서 오는 ‘상품’이고 ‘돈’이다. 현장 사진을 받으면 동물이 죽든 말든 그저 걸리지만 않게 들여오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보인다. 테이프로 칭칭 감은 육지거북, 양다리를 결박한 도마뱀, 지퍼백으로 개별 포장한 뱀, 밀집된 채 작은 통에 들어있던 악어 등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초콜릿통이나 과자통에 동물을 넣은 채 국제우편으로 밀수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살아있는 생물을 택배로 보낸다는 생각도 어이가 없지만, 엑스레이에 적발되지 않게 은박지로 덮거나 다른 물품들로 위장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배송이 되었는데도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안타깝지만 밀수에 이용되는 동물들은 거의 대부분 크기가 작은 새끼다. 당연히 새끼다 보니 약할 수밖에 없다. 아직 연약한 개체들이 이런 악조건 속에 밀수되다 보니 밀수 과정에서도 많이 죽고, 구조를 한 후에도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많다. 이젠 밀수가 적발되었다고 연락이 오면 일단 안타까운 마음부터 든다.
유기동물 역시 절반이 넘는 종이 파충류다. 유기된 파충류는 밀수와는 반대로 우선 크기가 큰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 키우다가 성장함에 따라 관리가 힘들어지니까 유기했구나 하고 느낌이 온다. 가장 유기가 많이 되는 설카타육지거북은 등갑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등갑 상태만으로도 기존 사육관리가 소홀했다고 예상할 수 있다. 나머지 유기동물들은 앵무들이다. 앵무의 경우는 탈출을 한건지, 주인이 유기를 한건지 판단하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유기동물 공고 기간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찾을 의지 조차 없다는 것이니 주인으로서 자격은 이미 없는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매년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보호시설에 도입된다.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난 이곳에 동물이 도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물들이 밀수되지 않고, 유기되지 않고, 불법사육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불쌍한 동물들이 안 생겼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하지만 나는 보호 중인 동물들을 관리하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도입될지 모르는 동물들을 위해 대기하고, 그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보호 중인 동물들을 더 좋은 곳으로 보낼 수 있길 바라며 동물 보내기 프로젝트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밀수파충류

유기 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