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생물자원관, 뜻밖의 첫인상

제가 전 세계 5대륙 40개국 수백 개의 도시를 여행한 여행자라는 소개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지구가 궁금했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떠났습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국가에서 제가 느낀 가장 큰 차이는 ‘그곳에서 나고 자라는 이들이 누리는 문화적 환경’이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모퉁이 바닥에 앉아 드로잉을 하는 청년들, 미국 워싱턴 D.C.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의 생동감 있는 전시에 가슴 뛰는 얼굴을 한 아이들을 보며 저는 분명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당연하게 누리고 자라는 환경이 그들의 사고와 세계관을 넓혀주고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여행을 하면서 전시·교육기관의 중요성을 피부로 깨달았습니다. 이렇듯 경험적 배경으로 인해 저는 항상 우리나라의 전시나 교육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느껴왔는데요. 여기에는 13살 터울의 어린 동생이 있다는 점도 큰 몫을 했습니다. 동생이 어릴 적부터 국내·외의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면서 국내 전시·교육기관이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받았습니다. 어느 곳을 가도 비슷하다는 인상이 강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실망이 커지다가 결국 관련 기관을 거의 찾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방문한 곳이 바로 국립생물자원관입니다. 그런데 웬걸, 첫인상부터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등장했습니다. 바로 ‘No 플라스틱’을 신경 써서 준비해 주신 다과 때문이었는데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수십여 공공기관의 다과를 경험해 보았으나, 이런 식의 다과를 준비해 주신 건 주한미국대사관 이후 처음 보는지라 매우 색다르고 인상 깊은 첫인상이었습니다.
이후 이어진 홍보팀장님의 기관 소개와 관장님의 소개 말씀에서 국립생물자원관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이때부터 기관에 대한 짙은 호기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뭐지? 뭐길래 이렇게 확신이 느껴지지?’ 그리고 호기심은 견학이 끝나면서 감사와 감탄으로 바뀌었습니다.

생물다양성에 가까워지는 시간

환경부 2030 자문단은 야생생물유전자원은행 관람을 시작으로 동양 최대 규모라는 동·식물, 곤충 표본 수장고 관람, 다양한 테마의 전시관 관람 등 국립생물자원관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요. 연구 중심의 공간에서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생물다양성에 대한 자원관의 수준 높은 보존 기술과 연구 수준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전시 중심의 공간에서는 다양한 생물정보들이 생동감 있게 담긴 콘텐츠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생물다양성을 보다 대중화할 수 있을까’ 하는 자원관의 고민이 그대로 보이는 듯했습니다.
전시 공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참여와 체험 중심의 관람 형태였습니다. 박제된 동물 표본을 만져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생물의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곳곳의 현미경들, 전시관 이곳저곳에서 홀로그램을 통해 관람자의 움직임을 쫓으며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까지. 마치 전시관 전체가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처음 전시관에 들어갔을 때, 예상보다 높은 전시 수준에 놀란 제가 “스미소니언 같다”라는 감탄을 했는데요. 이에 서민환 관장님께서 “여건만 된다면 스미소니언처럼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시관을 전부 다 둘러본 후, 저는 관장님의 그 말씀이 그저 농담으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곳이라면, 국립생물자원관이라면 정말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원관 견학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서민환 관장님께서 직접 시설 견학을 시켜주셨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장님께서 자문단 맞이부터 작별인사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하시며 자원관에 대한 모든 설명을 직접 해주셨는데요. 생물다양성에 대한 관장님의 진심이 돋보임은 물론, 환경 분야 후배들에 대한 애정 또한 여지없이 느껴졌기에 그저 감사하고 든든한 마음이었습니다. 덕분에 자문단원들은 더욱 즐겁게 자원관을 즐기고 체험하며, 지식과 정보를 얻고 다양한 모습을 소중히 눈에 담아왔습니다. 자원관 견학이라는 경험 자체가 생물다양성과 한층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된 것이지요. 한 번의 견학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성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중화와 가까워지길 바라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토록 수준 높은 전시·교육기관의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 무척, 무척 아쉬웠습니다. 저는 한국에 이런 기관이 있다는 점이 충격적일 지경이었습니다. 몰랐다니, 이런 기관이 있는 걸 여태껏 몰랐다니! 개인적으로 2023년 한·중·일 환경장관회담(TEMM) 청년포럼에 한국 대표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포럼의 주제가 생물다양성이었습니다. 활동 당시 제가 자원관을 방문했다면 분명 더운 풍성한 활동을 했을 것입니다. 환경부도, 국립생물자원관 자체적으로도 기관을 보다 공격적으로 홍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원관이 여태껏 구축해온 엄청난 콘텐츠들을 여러 방향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기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해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전시와 생물 표본을 직접 본다면 생물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열린’ 전문가 강연과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활성화하여 시민과 학생들이 생물다양성과 관련한 최신 연구 동향과 이슈를 배울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생태캠프, 시민과학 프로젝트, 지역 생태계 조사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생물다양성과 국립생물자원관 두 가지 모두를 대중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했으면 합니다.
큰일입니다. 한 번의 방문으로 애정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아마 저는 당분간 국립생물자원관과 관련한 활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얻은 게 더 큽니다. 그동안 어떻게 해도 관심을 붙이기 어려웠던 생물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드디어 마음속에 진심으로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전시·교육기관의 역할이 이렇게나 위대합니다.
어릴 적 동네 과학관 한쪽 벽의 세계지도를 보고 막연히 세계여행을 꿈꾼 저는 훗날 정말로 세계여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계여행을 하며 세상을 돌아본 후, 환경 문제에 대한 시야가 트여 청년활동가가 되었고요. 이 모든 게 경험적 교육의 힘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배우는 것만이 세상 공부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이 글을 쓰는 제가, 이 글을 쓸 기회를 주신 국립생물자원관이 바로그 산 증인 아닐까요? 아직까지 ‘숨은 보물’인 국립생물자원관이 머지않은 미래에 ‘드러난 보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