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두 곳만 존재하는 천연 비행장
우리나라 인천보다 북한의 장연군과 더 가까운 섬, 바로 백령도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비교적 환경과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2001년까지는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이었던 것도 한몫한다.
백령도에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육지에서 배를 타야 한다. 인천항에서 출발해 약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백령도는 고요, 그 자체였다. 가장 먼저 사곶해변 천연 비행장을 찾았다. 해변을 비행장으로 이용한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이탈리아(나폴리)까지 딱 두 나라뿐이다.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사곶해변은 전쟁 당시 비상상황을 대비해 활주로로 만들었는데, 한때 군사용으로 이용했던 비행장이 이제는 백령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이 됐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사곶해변은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처럼 끝도 없이 펼쳐진 긴 모래사장이 무척 인상적인 해변이다. 특히 자갈도 없는 모래사장의 모래알이 무척 고왔다. 오밀조밀하게 모래알이 응집한 느낌인지라 모래사장이 제법 딴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알고 보니 모래 크기가 매우 작고, 모래 사이의 틈 역시 매우 작아 모래층이 단단하게 형성된 덕에 자동차의 통행은 물론 비행기의 활주도 거뜬하다고 한다.
사곶해변
파도와 바람에 맞서 오랜 세월 견딘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섬이기 때문에 해변이 유명한 것은 당연하고, 백령도를 가면 꼭 봐야 할 자연풍경이 있다. 바로 기암괴석이다. 기암괴석은 기이하게 생긴 암석을 이르며, 해안가에 위치한 기암괴석의 경우 오랜 기간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다.
백령도의 기암괴석은 바로 두무진이다. 수억 년 동안 파도에 의해서 병풍같이 깎아진 50m 높이 정도의 해안절벽과 가지각색의 괴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1997년 명승으로 지정된 두무진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김새가 머리털같이 생겼다’라고 해서 두모진(頭毛鎭)이었다가 훗날 ‘장군 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두무진(頭武鎭)이라 개칭됐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두무진의 기암괴석은 그 모양에 따라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선대암, 팔각정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그중 선대암을 보고 조선 광해군 때의 서적 <백령지>에서는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절벽에는 여러해살이풀인 해국이 자라고, 해안에는 염색식물인 도깨비고비와 갯방풍, 땅채송화, 갯질경이가 자생하고 있다. 바위틈에서는 범부채가 자란다. 모두 평범한 식물이지만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퍽 대견했다.
넋 놓고 두무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 바닷바람과 파도에 얼마나 오랜 시간 깎이고 깎여야 이러한 절경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일까. 기암괴석과 해안절벽이 인내했을 그 긴 시간을 어림짐작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인내의 끝은 위대하다는 점이다.
백령도 두무진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백령도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야생동물들
물범
몸길이 1.4~1.7m, 체중 80~130kg이다. 수명은 30~35년 정도로 알려졌다. 수심 200~300m까지 약 30분간 잠수 가능하며 휴식을 취할 땐 물에 세로로 떠서 잠들거나 바위 위로 올라가 누워 있기도 하다. 회색이나 황갈색 바탕에 불규칙하게 있는 점무늬는개체마다 달라서 식별에 용이하게 쓰인다. 약 300여 마리가 백령도에 머물고 있으며, 이는 물범의 국내 최대 서식지다.
물장군
물장군은 몸길이 4.8~6.5cm로 우리나라 노린재목 곤충 중에서 가장 크다. 유충은 약 40일간의 성장 기간 동안 5번의 허물을 벗고 자라며, 성충이 되면 여름부터 가을까지 반년 동안 작은 물고기나 올챙이 등 다양한 수생생물을 잡아먹고 산다. 주요 서식지는 농수로나 작은 연못, 저수지 등 고인 습지다. 2012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이후 보기 힘들었으나 2021년 백령도에서 발견되었다.
저어새
몸길이는 75cm 정도다. 몸은 하얀색이지만 부리와 다리는 검은색인 게 특징. 부리는 주걱 모양과 닮아 있으며, 이 부리를 좌우로 저으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다. 그 때문에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 세계적으로 5,2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2019년 백령도에서 번식이 확인된 이후 2024년 6월 기준 둥지 28개가 관찰됐다.
노랑부리백로
왜가리과의 조류로, 백로의 아종 중에서도 50cm 정도로 작은 편이다. 강가의 숲에 모여 사는 여타 백로들과 달리 번식기에 노란색을 띠는 부리를 가지고 있으며, 갯벌이나 해변가에서 섭식하며 살아간다. 백령도에서 발견되는 노랑부리백로는 7,000km가 떨어진 필리핀을 왕복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용트림 바위
두무진
백령도 습곡구조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백령도의 가치
백령도에 자연의 모진 세월을 견뎌낸 절경이 또 있다. 습곡구조다. 습곡구조는 땅이 양옆에서 힘을 받아 물결처럼 휘어진 것을 말하는데, 백령도의 습곡구조는 고생대 말에서 중생대 초의 지각변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웅크리고 있는 듯한 거대한 바위에 누군가 붓으로 황금색 줄을 그은 것 같은 백령도의 습곡구조는 기괴하기에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눈에 담고 싶다.
특히 백령도의 습곡구조는 높이 50m, 길이 80m로, 이러한 거대 규모의 습곡구조가 드러난 일은 드물어서 한반도 지각 발달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천연기념물 제507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나무 데크를 따라 올라가면 습곡구조 꼭대기에 다다른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습곡구조와 마주 보고 있는 용트림 바위다. 거센 물살에도 꿋꿋하게 자리하고 있는 용트림 바위는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용이 하늘로 휘어져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령도는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의 공존이 가능한 섬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이 2018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백령도의 식물상이 700여 종이 넘었다. 한반도 자생식물종 수의 약 17%에 해당하는 수며, 약 600종으로 기록된 울릉도보다도 많다. 또한 국내 최대의 철새 경유지이자 물범의 최대 서식지다.
파도와 파도가 만나 만들어내는 새하얀 물거품과 열기가 가득한 바람, 인내를 품은 오래된 자연 풍경,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가보자, 백령도로.
자생생물과의 공존,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의 생물다양성 관리·보전 연구, 생물산업 지원연구, 국가 생물자원 정보관리 및 정책지원 연구, 생물표본 전시 등을 주요 활동으로 하는 환경부 소속 국가기관이다. 특히 생물자원의 보존과 연구를 위해 2007년 설립됐으며, 일반인과 연구자를 위해 소장 표본들을 전시하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한국 고유 생물 및 자생생물 표본만 985종에 이르며 4만 6,000여 점을 전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