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룡 검역관
야생동물 검역, 왜 해야 하나요?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되는 감염병을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합니다. 신종 감염병의 60% 이상이 동물로부터, 그중에서도 약 72%가 야생동물로부터 유래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공포로 뒤흔들었던 사스, 신종인플루엔자, 에볼라바이러스출혈열 등이 대표적인 인수공통감염병 사례입니다. 또한, 황소개구리나 뉴트리아와 같이 수입검역을 거치지 않은 야생동물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 사례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야생동물검역센터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해외 야생동물 유래 질병의 유입을 예방하고 생태계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며 종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야생동물 검역은 올 5월 19일 시행되었는데요. 아직 초기 단계로 향후 국가 야생동물 검역시행장 건립 등 인프라 구축과 세부 규정 정립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해서 미흡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야생동물에 대한 수입검역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호주는 동물원 전시 등의 목적으로만 파충류 수입이 가능하며, 수입 시 수의사의 임상검사 후 비정상 개체에 대한 정밀검사 실시 등 현재 우리나라와 유사한 방식으로 검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야생동물 수입검역의 현재와 미래
동물검역 등 질병 관리제도는 가축(조류·포유류), 어류 등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야생동물의 경우, 국제적 멸종위기종(CITES) 등 생태계 보전 위주로 관리하고 있다가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해양수산부에서 양서류 검역에 대한 세부 규정을 마련했고, 환경부에서 파충류에 대한 검역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야생동물 수입검역의 연관성이 희미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데요. 당시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험성 역시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이에 야생동물을 통한 해외 질병의 국내 유입을 방지하고자 2020년 6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해외 유입 야생동물 관리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했고,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야생동물 검역제도가 시행됐습니다.
야생동물 검역을 위해서는 검역증명서와의 일치 확인, CITES 해당 여부 조회 등을 위해 개체별로 종 동정이 필요합니다. 종 동정은 폭넓은 지식과 해당 분류군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 지식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야생동물 수입검역 중 종 동정을 위해 국립생태원과의 협업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야생동물검역센터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종 동정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현재, 수입 개체에 대한 사진 데이터 등을 축적하고 있으며, 향후 축적한 데이터와 AI를 이용하여 종 동정 업무를 하게 되면 검역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시스템 되기를
실제로 수입검역에 불합격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11월 말까지 여행자 휴대품 24건(도마뱀 4마리, 파충류 생산물 27마리 및 27.25kg)을 검역 불합격 처리했는데요. 전 건 모두 수입검역의 필수 서류인 수출국 정부의 검역증명서를 첨부하지 않아서였습니다.
현재 야생동물검역센터에는 저를 포함해 8명의 야생동물검역관이 근무 중입니다. 검역관은 화물로 들어오는 야생동물의 검역 및 인천공항 제1·2여객터미널에서 여행자가 휴대하여 들어오는 휴대품 검역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은 24시간 항공기의 이·착륙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검역관 또한 24시간 상주하여 상시 대비해야 합니다. 야생동물검역센터의 한정된 인력으로 여러 검역 장소와 많은 시간을 담당하고 있어 추가 검역관 등 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물론 보람도 넘칩니다. 야생동물 검역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업무입니다. 새로운 일을 처음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 흥미롭기도 합니다. 또한, 세계 많은 나라가 아직 시도하지 않은 제도인 점도 자부심을 가지게 하고요.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방역대책이 세계적인 모범 사례가 됐듯, 야생동물 검역 시스템을 잘 구축해 세계를 선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맨땅에 헤딩 같았던 수입검역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제도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초기에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화물 검역, 휴대품 검역의 신청이 얼마나 있을 것인지, 야생동물검역센터의 업무는 어떤 방향으로 추진될 것인지, 인프라는 어떻게 구축되어야 할 것인지 등 무엇 하나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습니다.야생동물 검역 시행 이후 약 5개월이 지난 지금은 환경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내 다른 부서 및 야생동물검역센터 직원들이 모두 노력해 모양을 갖춘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상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앞으로 야생동물검역센터는 야생동물 수입검역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현장 경험을 축적하면서, 생물다양성 증진 및 생태계 보전에 기여할 수 있는 야생동물 검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현장 상황을 반영한 제도 개선, 야생동물의 실정에 맞는 국가 야생동물 검역시행장 건립 등을 추진할 예정이며, 야생동물 수입검역이 올해 새로 시행된 제도인 만큼 국민들에게 야생동물(파충류) 검역이 필수라는 인식을 정착시키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다양한 반려동물 문화에 따라 주변에 도마뱀이나 거북 등 파충류를 반려동물로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독자들께서도 지인들에게 야생동물 검역제도를 널리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