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동물의 국경 관문, 야생동물검역센터
현재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야생동물검역센터를 운영 중입니다. 환경부는 작년 5월부터 국내로 수입되는 야생동물 파충류에 대한 검역업무를 실시하는 중인데, 이를 야생동물검역센터가 담당합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야생 파충류의 상태를 확인하는 ‘국경 관문’인 셈입니다. 야생동물검역센터는 외래 야생동물 유입으로 국내 토착 야생동물의 건강이 위협받지 않도록 건실한 검역 기능 구축을 위한 기틀을 세우고 있습니다.
야생동물 ‘건강’에 초점을
흔히 야생동물의 질병을 관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질병 자체가 아니라 건강을 관리해야 합니다. 미국, 호주, 유럽 등에서는 야생동물 질병을 연구·관리하는 국가기관 명칭에 '야생동물의 건강(wildlife health)'을 사용합니다. 야생동물 질병의 발현 여부가 생태적 건강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야생동물의 생태는 수많은 환경적·생물적 요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지는데 질병 또한 이런 요인 중 하나이자 상호작용의 결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불러온 야생동물 질병
질병은 보통 야생동물 숙주종과 미생물과의 관계 설정에 따라 발생 여부가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멧돼지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ASF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례처럼 야생동물이 익숙하지 않은 미생물에 노출되거나 기존보다 많은 양의 미생물에 노출되는 경우, 또는 기존에는 잘 견뎌내던 미생물의 감염을 견딜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하면 질병이 발현됩니다. 최근 들어 야생동물 관련 질병이 증가하는 이유는 인간이 야생동물의 생태를 다방면에서 파괴하고 변형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태의 파괴로 인해 야생동물들이 더 많고 새로운 병원체에 노출되거나 이들이 기존 병원체에 저항할 능력이 떨어지면 병원체의 감염 및 전파에 더욱 취약해집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특정 지역 또는 종의 야생동물에서 질병이 발생해 생물다양성을 위협한다기보다는, 인간에 의해 야생동물이 생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가기 때문에 질병 발생도 증가하고 생물다양성도 감소하는 것입니다.
멸종으로 이르는 복잡한 길
야생동물 멸종은 한 가지 원인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보통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1960년대에는 개인 사육을 위해 대량의 외래 양서류가 국제 거래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때 거래된 동물들을 통해 중남미 생태계로 유입된 항아리곰팡이병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중남미 토착 양서류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약 90종의 양서류를 멸종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병원체의 단독 영향만으로 완전히 멸종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질병이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위협은 보통 그보다 더욱 복합적이고 장기적으로 작용합니다. 예컨대 항아리곰팡이병으로 인해 당장 멸종되지는 않았으나 개체수가 감소한 양서류 종은 약 491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줄어든 야생동물들은 서식지 파괴나 남획 같은 멸종 위협 요인에 더 취약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서식지 파괴, 남획 등으로 이미 개체 수가 줄어든 종의 생존 개체에게 질병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도 합니다. 멸종에 질병이 기여한 사례로는 하와이에 서식하던 토착 조류들, 갈라파고스의 야생 설치류, 호주의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Thylacinus cynocephalus) 등이 있습니다. 아직 멸종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개인 사육을 위해 수입한 회색다람쥐(Sciurus carolinensis)가 갖고 온 질병(다람쥐두창; squirrel pox)으로 인해 영국 토착종인 붉은다람쥐(Sciurus vulgaris)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어 영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현재진행형 사례입니다. 이처럼 질병이 생물다양성 축소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기 때문에 그 예측이 힘들고 대응은 더욱 어렵습니다.
야생동물은 인간과 생활권이 다른 경우가 많아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미 많은 개체가 죽거나 개체군의 생존 자체가 위험해진 시점에 이르러야 알게 됩니다. 따라서 질병이 야생동물의 건강성,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야생동물 모니터링 및 건강성 예찰과 야생동물의 건강성을 해치는 인간 활동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