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연안 생물다양성 연구의 출발점, 고하도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도서·연안 지역에 서식하는 생물자원을 조사·발굴해 국가 생물주권 확보와 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가치와 생태적 중요성이 공존하는 전라남도 목포시의 고하도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이후 전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고하도에 머물렀고, ‘보배로운 꽃과 같은 섬’이라는 뜻의 보화도(寶化島)라고 표현하며 지형과 입지를 극찬했습니다. 실제로 고하도는 영산강 하구와 호남 곡창지대로 향하는 입구이자 서남해와 내륙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목화의 시험 재배지로 활용됐는데, 이를 계기로 목포는 목화 생산·유통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고하도는 도서 지역 고유의 생태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도서가 밀집한 서남해와 남해안 지역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나 도서·연안 생물다양성 연구 거점으로서 적합한 입지 조건을 갖췄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지리적·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고하도를 도서·연안 지역 생물다양성 연구의 출발점이자, 생태계 연구와 보전 전략을 수립할 장소로 삼았습니다.

작지만 활발한 고하도의 생물다양성

올해 4월,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개관 이후 3년간 수행한 고하도 관속식물상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고하도 전역을 대상으로 사전 문헌조사를 거친 뒤, 계절별로 총 17회의 현지조사를 했습니다. 모든 출현종에 대해 증거표본을 수집했고, GPS 좌표를 기록해 정밀한 분포 자료를 구축하고, 멸종위기종에 대해 현지조사표를 작성해 개체수와 분포 면적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조사 결과, 고하도에는 총 431분류군(105과 294속 395종 7아종 27변종 2품종)의 관속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고하도의 면적은 2.99km2로 유인도서 465개 중 114번째로 비교적 작은 도서지만, 이곳에 분포하는 식물은 한반도 전체 관속식물의 약 9.4%, 전체 도서 지역 식물의 약 15%에 해당합니다. 이는 고하도가 면적 대비 매우 높은 생물다양성을 지닌 지역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석곡, 지네발란, 한반도 고유식물인 병꽃나무, 외대으아리, 좀땅비싸리, 희귀식물인 왕자귀나무, 자란, 가는잎산들깨 등이 다수 발견돼 고하도가 생태적으로 보전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임을 다시금 알 수 있었습니다.

고하도 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식물

고하도는 목포대교 등 연륙교로 육지와 연결돼 접근성이 뛰어나며, 목포해상케이블카와 목화체험장 등 다양한 즐길 거리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외래종 유입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고하도의 외래식물은 총 91분류군으로 전체 출현종의 약 21%에 해당하는데, 실제로 주로 관광지 주변과 탐방로, 도로변을 따라 집중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1995년 조사에서 확인한 54분류군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로, 관광지 개발과 기후변화 등 외부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외래식물은 번식력과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토착 식물과 경쟁하며 빠르게 확산합니다. 특히 일부는 식물군집 내에서 우점종으로 자리 잡아 토착종을 대체하고, 그 결과 생물다양성이 감소하거나 식물, 동물 간 상호작용 구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보고됩니다.고하도에서는 가시상추, 물참새피, 도깨비가지, 돼지풀, 서양금혼초, 양미역취, 환삼덩굴 등 총 7종의 생태계교란 야생식물이 확인됐습니다. 이중 양미역취는 2008년 생태계교란 야생식물로 지정된 북아메리카 원산의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입니다. 개체가 크고 번식력이 뛰어나며 밀집 군락을 형성해 다른 식물의 생육 공간을 차단하고 타감물질을 생산해 주변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하고, 고하도에서는 탐방로 주변, 개활지, 농경지 인근에서 대규모 확산이 관찰됐습니다.

고하도에서 자생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석곡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의 섬 생태계 지키기

고하도를 비롯한 도서·연안 지역은 항만과 공항 등 외부와 연결되는 거점 시설이 밀집해 있어 의도치 않게 외래식물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지리적으로 고립된 제한적인 공간 때문에 유입된 외래식물이 빠르게 정착·확산할 수 있으며 지역 생물다양성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외래식물의 유입과 확산은 지역 식생 구성과 종 다양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관찰과 자료 축적이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정기적인 분포 현황 조사와 형태적 특성 등 기초 자료 확보에 주력하고, 연구 결과는 향후 관리 및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정보로 활용할 계획입니다.기후변화와 개발 압력이 거세지면서 도서·연안 지역의 식물들이 조용한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따뜻해진 날씨, 달라진 비 패턴은 외래식물에게 ‘기회의 땅’을 제공하는 반면, 토착 식물이 설 자리는 좁아지게 만듭니다. 이럴수록 생태를 눈여겨보고, 꾸준히 기록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변화에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작은 징후를 놓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오늘도 섬을 찾아가 식물의 변화를 차분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고하도의 외래식물 및 생태계교란 야생식물 분포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