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평 고산습지

그림 같은 수려함을 담은 영남알프스

푸릇했던 자연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얼굴을 바꾼다. 이 가을을 한껏 느끼려면 색색으로 물든 산을 찾는 게 제격이다. 올가을엔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영남알프스’의 풍경을 즐겨보자. 영남알프스는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경상북도가 만나는 영남 지역의 해발 1,000m 이상 높은 산지가 웅장한 산세를 이루는 모습이 유럽 알프스산맥에 빗댈 만하다는 뜻으로 부르는 별명이다. 단순히 다채로운 자연의 풍경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넘어, 풍부한 생태적 가치를 가진 지역이기도 하다. 울창한 산은 다양한 식물과 동물의 터전이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산 생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또한 낙동강으로 흐르는 물길의 시작이 되는 곳이 많아 영남권 생태계 순환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재약산이 품은 다채로운 자연의 얼굴

영남알프스 중에서도 가을 산행을 즐기기 좋은 곳으로 경상남도 밀양에 위치한 재약산을 추천한다. 생태관광지로 선정된 재약산과 사자평 고산습지는 따뜻한 색으로 물드는 단풍에 더해 고즈넉한 풍취를 완성하는 억새까지, 가을의 색감과 질감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사자평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억새평원을 자랑하며, 가장 큰 산지 습지이기도 하다. 산지형 습지의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해 생물다양성 보전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재약산은 여러 난도의 코스를 통해 등산할 수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 부근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도 있어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다양하게 즐기기 좋다. 트레킹 코스는 보통 재약산 기슭에 자리한 표충사에서 시작된다. 표충사는 원효대사가 654년 창건해 깊은 역사를 품은 곳이다.

‘표충사 사계’와 ‘재약산 억새’는 밀양시가 선정한 ‘밀양8경’ 중 하나로, 계절마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기 좋은 밀양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다. 재약산에는 총 5개의 생태관광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정상 수미봉은 1,119m 높이이며, 이곳에 오르기까지 여러 폭포의 장관을 마주할 수 있다. 흑룡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닮아 2단으로 굽이치는 흑룡폭포와 이름처럼 절벽을 따라 물길이 층층이 떨어지는 층층폭포 등 자연이 만들어낸 폭포의 신비로운 웅장함이 곳곳에 존재한다.

표충사

사자평 고산습지가 그리는 가을의 생태

‘사자평’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아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드넓은 평원’을 뜻하는 우리말에서 유래했다는 설, 과거 이곳에 ‘사자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는 설, 뒷산의 형상과 억새의 풍경이 사자를 닮아 붙은 이름이라는 해석 등이 있다. 사자평 고산습지는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만큼 오랜 역사를 품은 곳이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도의 수련장이었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에는 승병의 훈련장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 온 화전민이 정착해 마을을 이뤄 초등학교 분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정부가 생태계 보전을 위한 이주 정책을 시행했고, 주민이 모두 떠난 뒤 자연환경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며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해발고도 800m에 위치한 사자평 고산습지의 면적은 약 58만m²로 우리나라 산지 습지 중 가장 큰 규모다. 더불어 드넓은 억새군락지는 다른 계절에는 만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을의 색감과 고요한 풍경을 그려낸다. 이런 자연은 홀로 제 모습을 되찾은 것이 아니다. 2009년부터 밀양시는 복원사업을 실시했으며, 이어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45억 원을 들여 생태복원사업을 추진한 결과다. 물길을 정비하고, 습지 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생태탐방로를 데크 길로 조성하는 등 세심한 노력 끝에 사자평은 그림 같은 모습과 풍부한 생태를 되찾았다. 가을의 색으로 얼굴을 바꾼 사자평을 눈에 담는 순간,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압도감에 휩싸인다.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 뒤에 숨은 역사와 노력,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생명의 존재를 되새기게 된다. 높은 산 위에 펼쳐진 마르지 않는 습지처럼, 이곳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도 다채로운 자연과 함께 마르지 않기를 바라며 자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영남알프스 얼음골케이블카
층층폭포와 흑룡폭포

고산습지 생태계를 품은
밀양 재약산에 서식하는멸종위기 야생생물

비단벌레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이며 천연기념물인 비단벌레는 이름처럼 초록색의 금속성 광택이 특징이다. 몸길이는 30~40mm이며 앞가슴등판과 딱지날개에 붉은색 줄무늬 2줄이 눈에 띈다. 과거에는 장신구에 쓰이며 남획되다가 서식지 감소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 주로 한반도 중부, 남부의 삼림지대에 서식한다.

은줄팔랑나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팔랑나비과 곤충이다. 주로 식물 잎을 먹이로 하며 습지나 주변 풀밭에 서식한다. 양쪽 날개를 모두 펼치면 31~35mm 정도 크기로, 보통 나비보다 작은 편이다. 날개 앞면은 흑갈색, 뒷면은 암갈색이다. 뒷날개 중앙에 은백색 띠가 있어 은줄팔랑나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담비

족제비과에 속하는 담비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다. 성체의 길이는 몸통 59~68cm, 꼬리 40~45cm로, 꼬리만 몸통 길이의 3분의 2에 달한다. 머리, 얼굴, 다리, 꼬리는 어두운 갈색이고 등은 밝은 갈색, 배는 연한 살구색이다. 울창한 침엽수림에서 2~3마리씩 무리 지어 서식하며 전국 내륙에서 발견된다.

하늘다람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며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는 앞발의 발목 부위부터 뒷발의 무릎 부위까지 연결된 날개막을 갖고 있어 나무와 나무 사이 등을 이동하며 활강한다. 큰 눈과 짧은 귀도 특징이며, 주로 활엽수림에 서식하는 야행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내륙에서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