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명소, 두꺼비에게는 난코스

철원 용양보는 민간인통제구역에 자리한 습지로,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과 개발이 제한된 덕분에 자연환경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왔다. 하천과 얕은 물웅덩이, 초지, 버드나무 군락이 어우러진 이곳에는 식물과 곤충부터 조류, 포유류, 양서·파충류까지 다양한 생물이 살아간다. 특히 수위가 오르내리며 곳곳에 생겨나는 얕은 물웅덩이는 두꺼비와 큰산개구리가 알을 낳는 중요한 산란처가 된다.
이처럼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습지 한가운데에는 조금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용양보를 가로지르는 철길이다. 과거 철원과 금강산을 연결했던 금강산 전기철도의 흔적으로 지금은 옛 모습을 간직한 철도 형태의 탐방로로 남아 있다. 용양보를 찾은 사람들에게는 옛 철도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사진도 남길 수 있는 특별한 장소지만 작은 야생동물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에게는 추억을 따라 걷는 길이 이들에게는 이동을 가로막는 뜻밖의 장애물이 된 것이다.

진입은 쉬웠는데 탈출이 문제

용양보의 보전·복원사업을 검토하던 연구진은 현장답사 중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마주했다. 철도 구조물 안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오지 못한 두꺼비들이었다. 약 500m 남짓한 구간을 한 차례 살펴봤을 뿐인데 폐사한 두꺼비가 네 마리 발견됐고, 산란기에 이동하던 것으로 보이는 두 마리가 함께 고립된 모습도 확인됐다. 현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철길에 갇힌 두꺼비나 자라를 구조하고 폐사한 개체를 수거하는 일이 이전부터 반복되고 있었다.
문제는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일이었다. 철도 구조물의 높은 단차 때문에 안으로 들어온 작은 야생동물들이 다시 밖으로 빠져나가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람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을 수 있는 턱이지만 두꺼비나 자라에게는 좀처럼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산란지와 서식지를 오가는 길 한가운데 느닷없이 벽 하나가 놓인 셈이다. 그렇다고 탐방로로 이용되는 철길을 없앨 수도 없는 일. 사람의 길은 그대로 두면서 야생동물이 다시 오갈 수 있도록 막힌 길을 이어줄 방법이 필요했다.

두꺼비의 눈높이로 만든 철도 건널목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철길을 없애는 대신 야생동물이 스스로 넘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용양보의 생태이동통로는 흔히 떠올리는 육교나 터널처럼 별도의 시설물을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철도 구조물 일부를 완만한 경사면으로 바꿔 야생동물이 철길 안팎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작은 동물들을 위한 ‘철도 건널목’ 을 만든 셈이다. 경사로는 기울기 30도 이하, 폭 2m 이상으로 조성했으며 철길 안으로 들어온 동물이 어느 방향에서든 빠져나갈 수 있도록 양쪽을 오갈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들인 수고는 크지 않았지만 변화는 확실했다. 높았던 턱의 일부를 낮춰 작은 동물들이 오갈 수 있는 길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전처럼 철길을 따라 걸을 수 있고, 야생동물에게는 막혀 있던 길에 새로운 출구가 생겼다. 기존 탐방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야생동물의 이동을 돕는 길을 더해 하나의 철길 위에 사람과 야생동물의 길이 나란히 이어지게 된 것이다.

카메라에 포착된 두꺼비 통행 현장

자, 길은 만들었다. 그렇다면 야생동물들은 정말 이 길을 이용하고 있을까? 연구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현재 철도 구간 10개 지점에 무인센서카메라를 설치하고 야생동물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그리고 카메라에는 기다리던 장면이 하나둘 포착되기 시작했다. 두꺼비와 자라가 생태이동통로를 이용해 철길 안팎을 오가는 모습은 물론, 몸집이 작은 어린 개체가 경사로를 지나는 모습도 확인됐다. 사람이 지켜보지 않는 순간에도 작은 건널목에는 꾸준히 통행객이 오가고 있었던 셈이다.
연구진은 오는 10월경까지 무인센서카메라 모니터링을 이어가며 생태이동통로를 이용하는 야생동물의 움직임을 꾸준히 살펴볼 예정이다. 그렇게 용양보에는 사람의 길 곁으로, 야생동물을 위한 또 하나의 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구노트 연구원이 바라본 생태통로

Q. 개구리도 철길을 못 넘나요?

A. 점프력이 좋은 개구리들은 철도 구조물을 직접 뛰어넘기도 하지만 생태이동통로를 이용해 철길을 건너기도 합니다. 실제로 무인센서카메라에는 개구리들이 완만하게 조성된 통로를 따라 철길 안팎을 오가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같은 철길을 건너더라도 때로는 훌쩍 뛰어넘고 때로는 통로를 이용하는 등 종이나 개체의 이동 능력에 따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동물들은 건널목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고 찾아오나요?

A. 사실 알고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동하던 중 지나갈 수 있는 지점을 만나 자연스럽게 이용하죠. 그래서 생태이동통로는 어디에 설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용양보에서도 산란지와 서식환경 등을 고려해 양서·파충류의 이동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중심으로 통로를 배치했습니다.